· 소장품설명고려 태조(太祖) 21년 무술(戊戌)년부터 조선 광무(光武) 10년 병오년(丙午年)까지 934년간의 탐라사적(耽羅事蹟)을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하였다. 고려 이전의 사적을 외서(外書)라 하고 고종 10년 이후의 사실을 부록이라 이름붙혀 정편(正編)과 구분하였다. 한 가지 사건에 그일을 맡았던 관리들의 어질고 어리석고, 청렴하고, 탐욕스러움과 볼만한 것, 들을 만한것, 전할 만한 것의 경중에 따라 각기 다른 글자로 기록하여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밝혀 필삭을 엄히 함으로써 훗날의 관리되는 이들을 경구징비시켰다. 비록 작은 섬의 역사이나 위국(爲國)의 강목이 되게 하여 다시는 사직이 무너지는 비운을 없게 하려는 포부에서 쓰여진 제주 향토사이다. 1915년에 저술을 끝냈으나 1818년에야 초판이 간행되었다.『탐라기년』의 번역은 저자의 영윤(令胤)인 김계연(金啓淵)이 1968년 제주시지 7호로부터 1972년 21호 사이에 연재하였으며, 이를 재검토하여 1979년 제주도 교육위원회 교육자료 제29호 『탐라문헌집 耽羅文獻集』에 수록하였다.
특징고려 태조(太祖) 21년 무술(戊戌)년부터 조선 광무(光武) 10년 병오년(丙午年)까지 934년간의 탐라사적(耽羅事蹟)을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하였다. 고려 이전의 사적을 외서(外書)라 하고 고종 10년 이후의 사실을 부록이라 이름붙혀 정편(正編)과 구분하였다. 한 가지 사건에 그일을 맡았던 관리들의 어질고 어리석고, 청렴하고, 탐욕스러움과 볼만한 것, 들을 만한것, 전할 만한 것의 경중에 따라 각기 다른 글자로 기록하여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밝혀 필삭을 엄히 함으로써 훗날의 관리되는 이들을 경구징비시켰다. 비록 작은 섬의 역사이나 위국(爲國)의 강목이 되게 하여 다시는 사직이 무너지는 비운을 없게 하려는 포부에서 쓰여진 제주 향토사이다. 1915년에 저술을 끝냈으나 1818년에야 초판이 간행되었다.『탐라기년』의 번역은 저자의 영윤(令胤)인 김계연(金啓淵)이 1968년 제주시지 7호로부터 1972년 21호 사이에 연재하였으며, 이를 재검토하여 1979년 제주도 교육위원회 교육자료 제29호 『탐라문헌집 耽羅文獻集』에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