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나무관

국립공주박물관

원본 해상도 3000 * 2000


  • 명칭무령왕릉 나무관
  • 다른명칭무령왕릉 목관, 武寧王陵 木棺
  • 국적/시대한국-삼국
  • 출토지충청남도-공주시
  • 분류사회생활 - 의례생활 - 상장 - 관
  • 재질나무 - 기타
  • 소장품번호 공주 689

제 1유형 : 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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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장품설명 무령왕릉에서는 무령왕과 왕비를 모셨던 목관 2개가 출토되었는데, 관재(棺材)로 사용된 목재의 수종을 분석한 결과, 상엽침엽수 계통의 금송(金松, Sciadopitys verticillata)으로 판명되었다. 세계적으로 1과 1속 1종의 금송은 일본 남부지방의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최고급 목재로 고대의 일본에서도 지배계층이 사용했던 관재였다. 이러한 금송이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부여 능산리 동하총(東下塚), 익산 쌍릉(雙陵)과 같이 백제 왕릉급 고분의 목관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당시 백제와 왜의 긴밀했던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자료가 되었다.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은 삼국시대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된 목관 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는 자료이다. 목관은 목재에 옻칠을 한 관재를 기본으로 하여 금,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6개의 운반용 관고리, 다수의 관정(棺釘) 등을 결구하여 만들어졌다. 특히, 목관의 장측판(長側板)은 1개의 관재가 아닌 2개의 관재를 나무 쐐기와 나무 못으로 연결하여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왕과 왕비 목관의 구조는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사용된 관재의 수량, 각종 부속구의 종류 등 세부적인 형상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왕의 목관은 뚜껑[蓋板]에 5개의 관재를 사용하였고, 뚜껑, 장측판 등의 마구리 부분에 은제금구(銀製金具)를 덧붙여 장식성을 높였다. 이에 반해, 왕비의 목관은 뚜껑에 3개의 관재를 사용하였고, 별도의 은제금구를 결구하지 않았다. 왕 목관의 관고리는 2중의 꽃 모양 좌판(座板)에 두꺼운 철판(鐵板)을 부가하여 왕비의 관고리보다 볼륨감이 있다. 그리고 왕 목관의 관정은 꽃 모양의 좌판을 두고 머리에 금판(金板)을 씌웠지만, 왕비 목관의 관정은 별도의 좌판 없이 못머리 부분에 은판(銀板)을 씌웠다. 이와 같이 왕의 목관은 왕비의 목관에 비해 장식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신분적 지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전체 복원 크기는 왕 목관이 길이 262.0cm, 너비 77.0cm, 높이 97.0cm이며, 왕비 목관이 길이 250.0cm, 너비 75.0cm, 높이 94.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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