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독립 운동가인 윤봉길(1908-1932) 의사는 1926년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1931년 김구 선생의 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에 입단하여 조국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다. 1932년 일인 승전 자축(日人勝戰自祝) 집회에 나가 폭발물을 던지며 대한 독립의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그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4세의 나이로 사형당하였다. 이것은 이때 의사가 가지고 있던 유품 13건 68점 중 이력서와 유서이다. 이 유품들은 의사의 고향인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보내져 간직되던 것인데,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력서에는 자필로 자신의 이름과 본적, 본관이 적혀 있고 부모 성명이 밝혀져 있다. 어릴 때 총명하였고, 굳세고 급하여 다툼에 진 적이 없다는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이력서와 유서는 한인 애국단에 입단할 때 쓴 것으로, 공책 종이에 펜 글씨로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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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이력서 및 유서
국립중앙박물관
/ 보물
명칭윤봉길의사 이력서 및 유서
다른명칭보물 윤봉길 의사 유품(1972), 尹奉吉義士 遺品, 尹奉吉義士 履歷書, 遺書
국적/시대한국 - 일제강점
분류사회생활 - 사회운동 - 독립운동
재질지
특징독립 운동가인 윤봉길(1908-1932) 의사는 1926년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1931년 김구 선생의 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에 입단하여 조국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다. 1932년 일인 승전 자축(日人勝戰自祝) 집회에 나가 폭발물을 던지며 대한 독립의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그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4세의 나이로 사형당하였다. 이것은 이때 의사가 가지고 있던 유품 13건 68점 중 이력서와 유서이다. 이 유품들은 의사의 고향인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보내져 간직되던 것인데,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력서에는 자필로 자신의 이름과 본적, 본관이 적혀 있고 부모 성명이 밝혀져 있다. 어릴 때 총명하였고, 굳세고 급하여 다툼에 진 적이 없다는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이력서와 유서는 한인 애국단에 입단할 때 쓴 것으로, 공책 종이에 펜 글씨로 적은 것이다.
작가윤봉길(尹奉吉)
크기가로 17.5cm, 세로 27.1cm
국가지정유산보물
소장품번호
신수
6270
촬영연도
0
~ 0
제 1유형 : 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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