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종이에 먹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도화서 화원이다. 그의 자는 자유(子裕), 호는 설탄(雪灘), 본관은 청주이다. 그는 1655년의 통신사행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한시각은 남용익의 기행시화첩인 《부상시화첩(扶桑詩畫帖)》에 일본의 실경을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고화비고(古畫備考)』에는 그의 묵죽도 2점이 모사되어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및 전칭작은 10점 내외가 알려져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이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그가 일본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선종화들이다. 선종화는 무로마치시대 이후 주요한 회화 장르 중 하나가 될 만큼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다. 따라서 한시각의 선종화는 모두 이들이 일본에서 일본인들의 요청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종화는 수묵 위주로 또한 감필로 대상을 간일(簡逸)하고 조방(粗放)하게 묘사해 완성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시각의 <달마도>는 이러한 선종화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오직 먹으로만 또한 최대한 붓질을 줄여 달마를 표현했다. <달마도>에는 폭이 좁은 긴 화면에 모쿠안 쇼우토[木庵性瑫]의 화찬이 있다. 화찬은 화면 상단에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風䬃颯草姜姜 바람은 씽씽 풀은 우거졌는데 涉梁遊魏行裝不齊 양(梁)나라 건너 위(魏)나라 노닐며 길 차림이 일정하지 않으니 謂是傳心法 이를 전심법(傳心法)이리 일컫지만 何異眼玷沙 黃檗木庵拜題 눈 안의 모래 티와 어찌 다르랴 화제의 옆에는 [方外學士], [釋能瑙印], [木盦氏]이라는 인장이 있다. 화면 하단의 달마 옆에 ‘雪灘’이라는 묵서와 인장의 날인되어 있다.
특징종이에 먹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도화서 화원이다. 그의 자는 자유(子裕), 호는 설탄(雪灘), 본관은 청주이다. 그는 1655년의 통신사행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이때 한시각은 남용익의 기행시화첩인 《부상시화첩(扶桑詩畫帖)》에 일본의 실경을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고화비고(古畫備考)』에는 그의 묵죽도 2점이 모사되어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및 전칭작은 10점 내외가 알려져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이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그가 일본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선종화들이다. 선종화는 무로마치시대 이후 주요한 회화 장르 중 하나가 될 만큼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다. 따라서 한시각의 선종화는 모두 이들이 일본에서 일본인들의 요청으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종화는 수묵 위주로 또한 감필로 대상을 간일(簡逸)하고 조방(粗放)하게 묘사해 완성된다. 이런 측면에서 한시각의 <달마도>는 이러한 선종화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오직 먹으로만 또한 최대한 붓질을 줄여 달마를 표현했다. <달마도>에는 폭이 좁은 긴 화면에 모쿠안 쇼우토[木庵性瑫]의 화찬이 있다. 화찬은 화면 상단에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風䬃颯草姜姜
바람은 씽씽 풀은 우거졌는데
涉梁遊魏行裝不齊
양(梁)나라 건너 위(魏)나라 노닐며 길 차림이 일정하지 않으니
謂是傳心法
이를 전심법(傳心法)이리 일컫지만
何異眼玷沙 黃檗木庵拜題
눈 안의 모래 티와 어찌 다르랴
화제의 옆에는 [方外學士], [釋能瑙印], [木盦氏]이라는 인장이 있다.
화면 하단의 달마 옆에 ‘雪灘’이라는 묵서와 인장의 날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