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이것은 충주 가금면 입석마을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의 탁본으로 원석은 국보 제 205호로 지정되었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기 곤란하지만 495년(문자명왕 4)과 449년(장수왕 37)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돌기둥모양의 비석으로, 화강암 자연석을 이용해 글자를 새길 부분을 갈고 비문을 새겼다. 사면비(四面碑)로 제2면(앞면)이 10행 23열이고, 제3면(왼쪽면)은 7행 23열이다. 제1면(오른쪽면)과 제4면(뒷면)에서는 한두 자를 제외하고는 글자의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중원고구려비는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로서 고구려의 중원지역 진출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료이다. 특히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란 용어는 당시 고구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고 신라의 매금(寐錦) 즉 왕 등이 고구려의 의복을 받는 등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신라를 동이(東夷)라고 부르는 표현은 고구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으며, 고구려의 인명과 관등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여 당시 고구려의 정치조직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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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고구려비 탁본
국립중앙박물관
명칭중원 고구려비 탁본
다른명칭中原高句麗碑拓本
국적/시대한국 - 고구려
분류문화예술 - 서화 - 탁본 - 비문
재질지
특징이것은 충주 가금면 입석마을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의 탁본으로 원석은 국보 제 205호로 지정되었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기 곤란하지만 495년(문자명왕 4)과 449년(장수왕 37)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돌기둥모양의 비석으로, 화강암 자연석을 이용해 글자를 새길 부분을 갈고 비문을 새겼다. 사면비(四面碑)로 제2면(앞면)이 10행 23열이고, 제3면(왼쪽면)은 7행 23열이다. 제1면(오른쪽면)과 제4면(뒷면)에서는 한두 자를 제외하고는 글자의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중원고구려비는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로서 고구려의 중원지역 진출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료이다. 특히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란 용어는 당시 고구려 군대가 신라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고 신라의 매금(寐錦) 즉 왕 등이 고구려의 의복을 받는 등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신라를 동이(東夷)라고 부르는 표현은 고구려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으며, 고구려의 인명과 관등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여 당시 고구려의 정치조직을 잘 알 수 있다.
크기높이 144cm, 너비 55cm
소장품번호
신수
8003
촬영연도
0
~ 0
제 1유형 : 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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