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린 영조(英祖)의 반신(半身) 초상화로 조석진(趙錫晉, 1853∼1920)과 채용신(蔡龍臣, 1850∼1941)등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영조의 51세 때(1744년) 모습을 그린 것으로, 머리에는 익선관(翼善冠)을 썼으며, 좌안(左顔) 칠분면(七分面)에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년의 얼굴인데 안면에는 도화색 홍기가 보인다. 눈매는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짙은 갈색선으로 윤곽을 그렸으며, 콧날은 오뚝 서 있다. 수염은 한 올 한 올 공들여 표현하였다. 양 팔은 공수자세를 취하고, 가슴과 두 어깨에 오조룡(五爪龍)을 금실로 수놓은 홍룡포(紅龍袍)를 착용하였다. 가슴의 보(補) 부위까지 올라와 있는 대(帶)는 18세기 중엽의 특색을 반영하고 있다. 이 옷차림은 왕이 편전에서 신료들과 함께 국정을 논할 때 입는 옷이며, 머리에 쓴 매미의 날개를 본 뜬 익선관은 청렴과 검소를 뜻한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英祖大王御眞 光武四年 更子移摸’라고 쓰여진 표제(標題)가 있다. 《고종실록(高宗實錄)》 권41, 38년 1월 5일 기사에는 영조대왕 어진과 정조 선황제 어진의 신본표제(新本標題)를 고종이 직접 쓰겠다고 한 내용이 있어, 이 표제는 고종황제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어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좌측 가장자리에는 화재(火災)로 인해 손상된 부분이 보인다.
특징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린 영조(英祖)의 반신(半身) 초상화로 조석진(趙錫晉, 1853∼1920)과 채용신(蔡龍臣, 1850∼1941)등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영조의 51세 때(1744년) 모습을 그린 것으로, 머리에는 익선관(翼善冠)을 썼으며, 좌안(左顔) 칠분면(七分面)에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년의 얼굴인데 안면에는 도화색 홍기가 보인다. 눈매는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짙은 갈색선으로 윤곽을 그렸으며, 콧날은 오뚝 서 있다. 수염은 한 올 한 올 공들여 표현하였다. 양 팔은 공수자세를 취하고, 가슴과 두 어깨에 오조룡(五爪龍)을 금실로 수놓은 홍룡포(紅龍袍)를 착용하였다. 가슴의 보(補) 부위까지 올라와 있는 대(帶)는 18세기 중엽의 특색을 반영하고 있다. 이 옷차림은 왕이 편전에서 신료들과 함께 국정을 논할 때 입는 옷이며, 머리에 쓴 매미의 날개를 본 뜬 익선관은 청렴과 검소를 뜻한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英祖大王御眞 光武四年 更子移摸’라고 쓰여진 표제(標題)가 있다. 《고종실록(高宗實錄)》 권41, 38년 1월 5일 기사에는 영조대왕 어진과 정조 선황제 어진의 신본표제(新本標題)를 고종이 직접 쓰겠다고 한 내용이 있어, 이 표제는 고종황제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어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좌측 가장자리에는 화재(火災)로 인해 손상된 부분이 보인다.
크기가로 73.0cm, 세로 169.2cm, 가로(화면) 61.8cm, 세로(화면) 110.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