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잉군초상

국립고궁박물관

원본 해상도 2347 * 1440


  • 명칭연잉군초상
  • 다른명칭延礽君肖像
  • 국적/시대한국 - 조선
  • 분류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재질섬유 - 견
  • 크기가로 98.0cm, 세로 244.0cm, 가로(화면) 87.0cm, 세로(화면) 183.0cm
  • 소장품번호 창덕 6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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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장품설명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린 영조(英祖)의 연잉군(延礽君) 시절 전신(全身) 초상화로, 1714년(영조 21세)작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영조(英祖)의 연잉군(延礽君) 시절을 그린 것으로 좌안(左顔) 팔분면(八分面)에 공수자세를 취하고 호피(虎皮)가 깔린 교의자(交椅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사모(紗帽)의 모체는 높고 양각이 넓으며 곧게 뻗어 있다. 얼굴의 눈매에는 테두리가 짙게 칠해져 두드러져 보이며, 두 줄의 갈색 선으로 쌍꺼풀 주름을 표현하고 수염은 성글게 표현하였다. 의복은 금사선(金絲線)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백택(白澤) 흉배가 부착되어 있는 녹색 단령(團領)이다. 족좌(足座) 위에는 바닥에 화문석을 깔고 팔자형(八字形)으로 검은색 녹피화(鹿皮靴)로 된 화자(靴子)를 올려놓았다. 화면의 왼쪽 상단에는 “初封延礽君古號養性軒[처음에는 연잉군에 책봉되었고, 호는 양성헌이다]”이라고 적혀 있어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초상화는 영조21년(1745)에 경희궁(慶熙宮) 태녕전(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경현당(景賢堂)에 두었으며 정조2년(1778) 3월 다시 선원전(璿源殿)으로 이봉된 이력이 있다.
    초상화를 그린 작자에 관하여서는 숙종 어진도사의 주관화사였던 진재해(秦再奚, 1691∼1769)가 그렸다는 것과, 박동보가 그렸다는 것의 두 가지 의견이 있다. 박동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14년(숙종 40) 숙종은 이 그림을 하사하였는데, 당시 8개월간 병상에 있었던 숙종을 연잉군과 연령군이 밤낮으로 곁에서 시중을 들었던 수고를 기특히 여겨 화원 박동보로 하여금 두 왕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마구간에서 기르던 말과 함께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열성어제숙종대왕(列聖御製肅宗大王)」에 나온다고 한다.
    화면 좌측 상단 화기(畵記) : 初封延礽君古號養性軒
    초상화의 오른쪽 1/3부분이 화재로 소실되어 2/3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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