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1897년 10월, 고종은 서울 환구단(圜丘壇)에서 황제(皇帝)에 오르고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선포하였다. 이후 고종은 정부조직, 관직 명칭, 제례를 포함한 의식 및 예절을 바꾸는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조치 중 하나가 이전에 사용하던 국새(國璽)를 황제국가의 품격에 맞게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거북이 장식을 황제를 상징하는 용으로 바꾸었다. 일제강점 후 잠시 일본에 빼앗겼던 이들 국새와 어보(御寶)는 해방 후 되찾아 총무처에서 관리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많은 수가 산실되고 현재는 ‘대원수보(大元帥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3개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대원수보는 군대 운영과 관련된 업무에 사용한 것이고, 제고지보는 고급 관원의 임명에 사용하였다. 칙명지보는 통신조서에 사용한 것이다. 이 국새는 천은(天銀)에다 금으로 도금한 것으로 인수(印綬)는 없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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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새 칙명지보
국립중앙박물관
/ 보물
명칭국새 칙명지보
다른명칭보물 국새 칙명지보(2021), 金銀製 勅命之寶, 금은제 칙명지보
국적/시대한국 - 대한제국
분류전통과학 - 인장 - 인장 - 새인
재질금속 - 금
특징1897년 10월, 고종은 서울 환구단(圜丘壇)에서 황제(皇帝)에 오르고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선포하였다. 이후 고종은 정부조직, 관직 명칭, 제례를 포함한 의식 및 예절을 바꾸는 조치를 취하였는데, 그 조치 중 하나가 이전에 사용하던 국새(國璽)를 황제국가의 품격에 맞게 다시 만드는 것이었다. 즉 기존의 거북이 장식을 황제를 상징하는 용으로 바꾸었다. 일제강점 후 잠시 일본에 빼앗겼던 이들 국새와 어보(御寶)는 해방 후 되찾아 총무처에서 관리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많은 수가 산실되고 현재는 ‘대원수보(大元帥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3개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대원수보는 군대 운영과 관련된 업무에 사용한 것이고, 제고지보는 고급 관원의 임명에 사용하였다. 칙명지보는 통신조서에 사용한 것이다. 이 국새는 천은(天銀)에다 금으로 도금한 것으로 인수(印綬)는 없어진 상태다.
크기가로 9.2cm, 세로 9.2cm
국가지정유산보물
소장품번호
신수
241
촬영연도
0
~ 0
제 1유형 : 출처표시
저작권 보호분야 “국새 칙명지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