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 국보

원본 해상도 2000 * 3000


  • 명칭송시열 초상
  • 다른명칭국보 송시열 초상(1987), 宋時烈 肖像
  • 국적/시대한국 - 조선
  • 분류문화예술 - 서화 - 회화 - 일반회화
  • 재질사직 - 견
  • 크기세로 89.7cm, 가로 67.6cm
  • 국가지정유산국보
  • 소장품번호 덕수 2828

제 1유형 : 출처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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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장품설명 평상복 차림에 복건을 쓴 이 작품은 송시열을 그린 초상화 중에서도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된다. 주름 및 수염에 보이는 섬세한 얼굴 표현과 사실적인 묘사력이 두드러진다. 몸의 윤곽을 그린 견고한 필선과 음영을 표현하지 않은 직선 위주의 간명한 옷 주름은 조선 중기 학문과 사상을 지배한 거두(巨頭)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얼굴과 복식에서 음영 처리가 나타나지 않는 점 등은 17세기 초상화의 전형적인 특징이지만, 18세기-19세기에 원본을 충실하게 옮겨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윗부분에 글들이 있다. 오른쪽 글은 송시열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을 해서로 쓴 것이고, 왼쪽 “御製 節義千秋高”로 시작하는 글은 숙종(肅宗)이 정몽주(鄭夢周) 사당에 봉안된 정몽주 초상화에 헌정한 시를 예서로 쓴 것이다. 이 시는 『열성어제(列聖御製)』 권11 「숙종어제(肅宗御製)」에 수록되어 있다. ‘어제御製’ 글자 아래에 ‘정묘조’라고 작게 적혀 있다. 이 글 마지막 부분에 “숭정 기원후 두 번째 무술년(1718년) 3월, 바쁜 국정國政에 틈을 내어 추가로 짓다(崇禎紀元後再戊戌三月, 追製於萬機之暇)”가 적혀 있다. 두 번째 무술년은 1718년이나 이 문장과 ‘정묘조’를 연결해 무술년을 1778년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가 숙종의 시라는 최근 연구 성과에 의거해 1718년으로 본다. ‘정묘조’라고 적혀 있으므로 ‘정묘’라는 묘호가 정해진 1800년 7월 이후에 이 글을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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