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흥사 경덕국사 난원 묘지명
국립중앙박물관
원본 해상도 3000 * 2188
九龍山福興寺故王師都僧統贈諡景德國師墓誌{{소자쌍행:幷序}}
國師諱爛圓, 俗姓金氏, 其先安山郡人也. 故尙書左僕射諱兢弼祖也, 故檢校太師▨柱國諡安平公諱殷傅▨也, 故安孝國大夫人李氏妣也. 故中樞使兵部尙書忠贊兄也, 故首座弘▨師也.
師自削周羅, 脫身于豪▨間, 遭遇累朝, ▨揚緇秩, 纔及順耳, 陟爲王師. 智慧花果, 自然成就, 實謂人中之師子矣.
鳴▨! 以咸雍二年丙午冬十月八日示化報, 年六十八, 僧夏五十七. ▨▨震悼, 咸石迦文之入涅槃. 卽以其月詔護葬事權窆于五龍山南崗, 更取▨子冬十月, 竪碑塔於九龍山福興寺乾隅, 尋奉靈骸移安于玆地, 順也. 門弟等弗朽是圖, 乃爲墓誌.
九龍山兮山之秀, 景德師兮師之尊. 彼佛刹兮旣證果, 此靈本兮且安魂.
구룡산(九龍山) 복흥사(福興寺)의 돌아가신 왕사 도승통(王師 都僧統)이자 추증받은 시호 경덕국사(景德國師, 김난원)의 묘지(墓誌) {{소자쌍행:병서(幷序)}}
국사는 이름이 난원(爛圓)이고,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선조[先]는 안산군(安山郡) 사람이다. 돌아가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긍필(金兢弼)이 할아버지이고, 돌아가신 검교태사 상주국(檢校太師 上柱國)으로 시호가 안평공(安平公)인 김은부(金殷傅)가 ▨이며, 돌아가신 안효국대부인(安孝國大夫人) 이씨가 어머니이다. 돌아가신 중추사 병부상서 (中樞使 兵部尙書)인 김충찬(金忠贊)이 형이고, 돌아가신 수좌(首座) 홍▨(弘▨)이 은사이다.
국사는 스스로 머리[周羅]를 깎고 호▨(豪▨) 사이에서 몸을 빼내어, 여러 임금[累朝]을 만나 승계[緇秩]를 ▨ 드날렸다. 비로소 예순[順耳]에 이르러 왕사에 올랐으니, 지혜(智慧)의 꽃과 과실이 자연히 무르익어 실로 사람 중의 사자[師子]라 할 만 하다.
아아! 함옹(咸雍) 2년 병오(문종 20년, 1066) 겨울 10월 8일에 입적하시니[示化報], 나이는 68세이고, 승랍[僧夏]은 57세이다. ▨▨ 매우 슬퍼하여, 석가모니[石迦文]가 열반에 들어간 것과 같았다. 곧 그 달에 조서로써 장례 일을 도와 오룡산(五龍山) 남쪽 언덕에 임시로 모셔두었다가[權窆], 다시 ▨자(▨子)년 겨울 10월에 가져와서 비(碑)와 탑(塔)을 구룡산 복흥사의 서북쪽 모퉁이[乾隅]에 세우고, 유골[靈骸]을 높이 받들어 이 땅에 편히 옮겨 편하게 하였으니, 옳은 일이다. 문하의 제자들이 이 도(圖)가 썩어 없어지지[弗朽] 않기를 〈바라며〉, 이에 묘지를 짓는다.
구룡산이여! 산 중에 빼어나고 경덕국사(景德師)여! 스승 중에 높으시다.
저 절에서 이미 진리를 깨우쳤으니[證果], 이 영혼의 본원에서 또 넋이 평안하리라.
- 번역자: 성균관대학교
九龍山福興寺故王師都僧統贈諡景德國師墓誌{{소자쌍행:幷序}}
國師諱爛圓, 俗姓金氏, 其先安山郡人也. 故尙書左僕射諱兢弼祖也, 故檢校太師▨柱國諡安平公諱殷傅▨也, 故安孝國大夫人李氏妣也. 故中樞使兵部尙書忠贊兄也, 故首座弘▨師也.
師自削周羅, 脫身于豪▨間, 遭遇累朝, ▨揚緇秩, 纔及順耳, 陟爲王師. 智慧花果, 自然成就, 實謂人中之師子矣.
鳴▨! 以咸雍二年丙午冬十月八日示化報, 年六十八, 僧夏五十七. ▨▨震悼, 咸石迦文之入涅槃. 卽以其月詔護葬事權窆于五龍山南崗, 更取▨子冬十月, 竪碑塔於九龍山福興寺乾隅, 尋奉靈骸移安于玆地, 順也. 門弟等弗朽是圖, 乃爲墓誌.
九龍山兮山之秀, 景德師兮師之尊. 彼佛刹兮旣證果, 此靈本兮且安魂.
구룡산(九龍山) 복흥사(福興寺)의 돌아가신 왕사 도승통(王師 都僧統)이자 추증받은 시호 경덕국사(景德國師, 김난원)의 묘지(墓誌) {{소자쌍행:병서(幷序)}}
국사는 이름이 난원(爛圓)이고,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선조[先]는 안산군(安山郡) 사람이다. 돌아가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긍필(金兢弼)이 할아버지이고, 돌아가신 검교태사 상주국(檢校太師 上柱國)으로 시호가 안평공(安平公)인 김은부(金殷傅)가 ▨이며, 돌아가신 안효국대부인(安孝國大夫人) 이씨가 어머니이다. 돌아가신 중추사 병부상서 (中樞使 兵部尙書)인 김충찬(金忠贊)이 형이고, 돌아가신 수좌(首座) 홍▨(弘▨)이 은사이다.
국사는 스스로 머리[周羅]를 깎고 호▨(豪▨) 사이에서 몸을 빼내어, 여러 임금[累朝]을 만나 승계[緇秩]를 ▨ 드날렸다. 비로소 예순[順耳]에 이르러 왕사에 올랐으니, 지혜(智慧)의 꽃과 과실이 자연히 무르익어 실로 사람 중의 사자[師子]라 할 만 하다.
아아! 함옹(咸雍) 2년 병오(문종 20년, 1066) 겨울 10월 8일에 입적하시니[示化報], 나이는 68세이고, 승랍[僧夏]은 57세이다. ▨▨ 매우 슬퍼하여, 석가모니[石迦文]가 열반에 들어간 것과 같았다. 곧 그 달에 조서로써 장례 일을 도와 오룡산(五龍山) 남쪽 언덕에 임시로 모셔두었다가[權窆], 다시 ▨자(▨子)년 겨울 10월에 가져와서 비(碑)와 탑(塔)을 구룡산 복흥사의 서북쪽 모퉁이[乾隅]에 세우고, 유골[靈骸]을 높이 받들어 이 땅에 편히 옮겨 편하게 하였으니, 옳은 일이다. 문하의 제자들이 이 도(圖)가 썩어 없어지지[弗朽] 않기를 〈바라며〉, 이에 묘지를 짓는다.
구룡산이여! 산 중에 빼어나고 경덕국사(景德師)여! 스승 중에 높으시다.
저 절에서 이미 진리를 깨우쳤으니[證果], 이 영혼의 본원에서 또 넋이 평안하리라.
- 번역자: 성균관대학교